그런가 하면 선비들은 교양이 하늘을 찌를 만큼 학식이 높은 사람입니다. 선비는 그저 지식이 많은 것이 아니라 사물의 이치를 깨달은 사람입니다. 그래서 선비들은 어떤 일에 임해도 그 이치를 살펴 곧 해결책을 제시합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여러분들은 옛 선비들이 집이나 기계의 설계자였다면 믿을 수 있겠습니까? 선비들은 집을 손수 지었습니다. 본인이 연장을 들었다는 게 아니라 전체적인 아이디어를 제공했다는 면에서 그렇다는 것입니다. 퇴계가
도산서당을 지을 때 시공은 평소에 안면 있던 승려가 와서 했지만 전체 설계는 본인이 했습니다. 퇴계의 머리 속에는 집 설계도가 들어 있었던 것입니다. 더 극적인 예가 있습니다. 세계문화유산인 수원
화성의 설계를 누가 했을까요? 지금처럼 건축가가 한 것이 아니라 다산
정약용을 위시한 유학자들이 했습니다. 게다가 다산은
거중기, 즉 무거운 돌을 들 수 있는 기계를 만들었지요? 퇴계나 다산과 가장 비슷한 사람을 현대에서 꼽으라면 인문학을 전공한 교수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요즘의 인문학 교수들이 집을 짓고 새로운 기계를 만든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습니다. 이렇게 보면 당시의 학문(인문학)의 수준이 지금보다 훨씬 높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선비들은 이 정도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정말로 못 하는 게 없습니다. 여러분들은 [
자산어보]라는 책을 아실 겁니다. 이 책은 흑산도 근해에 사는 각종 어류와 수중 식물 155종을 분류하고 정리한 책입니다. 그런데 이 책을 누가 썼을까요? 다산의 형인
정약전 입니다. 이 책은 그가 흑산도에 유배 갔을 때 쓴 것인데 우리나라 최초의 해양생물학지라 할 수 있습니다. 정약전 역시 전형적인 선비입니다. 그도 유배 가기 전까지는 바다에 사는 생물에 대해 거의 관심이 없었을 겁니다. 그러나 유배지에서 어민들과 같이 생활하게 되면서 집필의 필요를 느껴 쓴 것이 이 책입니다. 그는 선비로서 만물의 이치를 나름대로 알고 있었기 때문에 어민들이 해준 설명만 가지고도 수중 생물들의 전모를 파악할 수 있었던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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