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국유사]에 따르면 늦어도 7세기 말 경에는 우리나라에 정병이 전해진 것으로 생각되지만, 가장 오래된 정병은 8세기 중엽 만들어진 석굴암에 남아 있다. 몇몇을 제외하면 현존하는 대부분의 정병들은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것이다. 금속 정병은 대부분 표면을 장식하는 문양이 없으며, 문양이 있는 경우에는 입사 기법으로 물가의 풍경을 묘사한 ‘포류수금문’이 주로 표현되었다. 이 문양은 금속제 정병과 향완은 물론 청자 정병과 대접에도 보여 고려시대에 매우 유행한 문양이었음을 알 수 있다.
금속기뿐만 아니라 도자기로도 정병이 만들어졌는데, 청자에는 다양한 문양이 여러 가지 기법으로 장식되어 있다는 것이 다른 점이다. 청자 정병은 음각, 양각, 상감 기법 등으로 문양을 새겼으며, 포류수금문을 비롯하여 연꽃, 국화, 모란, 넝쿨무늬 등 장식된 문양도 다양하다. 이 청자 정병은 물가 풍경 중 일부를 문양 소재로 삼았는데, 갈대나 버드나무에 비해 기러기와 원앙이 크게 표현되어 있다. 이처럼 도자기에서는 문양이 공예적인 도안으로 변화되어 있어 금속기의 문양과는 차이가 있다. [선화봉사고려도경]을 보면, 고려에서는 귀족과 관리들뿐 아니라 사찰과 도관, 민가에서도 물을 담을 때 정병을 사용했다고 한다. 이들이 계율을 지키는 승려처럼 물을 걸러서 정병에 담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사찰 밖의 모든 계층에서 불교 의식구인 정병을 사용할 만큼 정병이 보편화되었다는 점은 매우 특이하다. 아마도 불교국가였던 고려에서는 일상적인 생활에도 불교의 영향이 컸기 때문에 이런 현상이 나타난 것으로 추정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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